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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통

답변


얼마전... 벌써 한달정도는 안되었겠지 싶었는데....한달 가량 지났는데,

짤막하지는 않지만 어설프게 작성했던 글.


여러 사람한테 보냈건만 피드백 온거는 하나 밖에 없다.



내가 아닌 이 피드백을 보낸 분이 바쁜 관계로 간단하게 답변을 하고자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글 수필 일기형식

- 이런 형태의 글을 평소에 접해보지 않아서라고 생각이 됨, 인문학적 글쓰기란 자기 성찰이 들어간 글쓰기임, 일기가 아니란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면 괜찮다고 생각함. 


자신 삶을 관찰함으로써 얻어진 단어들, 주관적인 정의를 별도로 내린 단어의 선택(ex. 성장통, 좌표, 배치, 공부, 환자, 존재, 소수자 etc...)

- 글에서도 말한적 있지만 전제를 뒤집을 수 있는 것이 공부임. 즉 여태까지 자신의 인식속의 개념들을 뒤집어 재정의 하는 것이 중요함.  뒤집어 재정의하되 삶에서 지속적으로 표헌이 되고 나타나진다면 그것은 스타일.


주관적으로 재정의된 단어의 사용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존재

인문학적인 글에서 받은 영향?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모습

끊임없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고민

나아가기는 하나 지향점이 올바른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진행중

원인과 지향점, 목적성에 대한 재정의 계속

착실히 더 나은 방향으로 조금씩 진행


끊임 없이 변화하는 것이 삶이긴 하지만 그런 삶은 목표가 아님. 변화속에서 변화하지 않는 한점이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함.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은 고정불변의 사실임, 돌고 있는 팽이의 중심축과 같은.



나머지에 대한 답변은 한방에?... 면 좋겠지만,


사실 이렇게 뭔가에 대한 피드백이 있고, 그걸 생각해볼 수 있어야 고립되지 않을 수 있는데, 나의 기운은 나를 고립화시키는 경향이 있고, 또 지금처럼 그렇지 않게 만드는 경향 두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변화에 대한 아직 막연한 레벨이지만 나의 생각은,

변화의 중심축은 변화 그 자체이다. 변화의 중심축을 세우는 과정에서 우리는 결코 '나'라는 인식론적 틀을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즉 중심축을 세우는 행위가 내가 쌓아올린 성에서 벗어날 수 없음이다. 변화의 중심축을 정말로 잘 세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불가능 하지 않을까? 그리고 중심축이 있는 변화는 c/s 기반으로 여겨진다. 내가 원하는 개념은 클라우딩 컴퓨팅 개념이다. 암튼 변화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있는 것 아닐까.


변화의 한점 역시 중심축과 같다. 이 한점이 우주적 관점에서의 한점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볼 수 있는 세상에서의 한점에 불과하다면 그건 나의 욕망, 습 덩어리에 불과할 뿐이다. 그 한점만을 생각한다면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을까.

그 한점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이 세상의 배치에 의한 한 점일 수 밖에 없으므로 그 한점을 내가 인식할 수 있는 수준에서의 한 점이라고 한다면 나의 욕망이전에 이 사회의 욕망이 담겨져 있을 수 밖에 없음. 내가 이 사회의 욕망으로부터도 벗어난 것을 볼 수 있을 정도가 된다면 그 한점을 세울수도 있지 않을까 싶음.


풀어가는 과정에서나 생각하는 과정에서도 그렇지만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겸손이 아니라 사실이다. fact 다. 그래서 공부하고 살아가야 한다. 삶 속에 공부가 있고 공부하는 것이 곧 삶이므로.


그걸 받아본 사람들이 이걸 보고 피드백이라도 줬으면 좋겠구만... 왜 달라고 한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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