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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4.잡문집,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무라카미 하루키

언제부턴가 혹은 아주 오래전부터 책을 읽고 나면 멍하다. 그냥 멍하다.
무언가 재밌는 구절도 많았고 인상적이었던 부분도 있었지만 멍해진다. 그냥 그렇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책을 읽고 조금이라도 정리를 할려는 맘을 먹은지 몇년이 되었지만, 잘 안하게 된다. 그나마 이 책은 좀 나은편이기에 몇자 적어보고자 한다. 말 그대로 몇자 더하기 책내용 일부만.

하루키의 책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사실 이전에 읽어본 거라고는 한권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렇게 소소한 글을 읽어보면 무언가 어떤면에서 꽤 공감이 가는 면이 많다. 어떤 대상을 대하는 혹은 접근하는 방식이랄까. 세상에 대한 작가의 가치관적인 측면이랄까. 은근히 공감은 가지만 설명은 어렵다. 그런고로 설명은 생략.
그 이외에 인상적이었던 점은 이 책에는 재즈에 관한 이야기가 정말 많이 나오는 점이고, 무엇보다도 그 부분을 가장 흥미있게 읽었다. 재즈에 대한 이해도가 정말 높아보였고, 그것이 책에 글로 잘 표현되어 있었다. 여태 내가 들은 것들에 대해 전혀 이해도 못하고 있는데 대한 반성이 되었던.

예상했던 대로 뭘 적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만약 이걸 나중에 다시 본다고 하여도 이 책을 본 느낌을 그 때 가서 되살리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이 글을 보고는,

그래도 책에 멋진 부분은 좀 기록해두고 싶다.

405페이지

음악이든 소설이든 가장 기초에 자리 잡고 잇는 것은 리듬이다. 자연스럽고 기분 좋으면서도확실한 리듬이 없다면, 사람들은 그 글을 계속 읽지 않겠지. 나는 리듬의 소중함을 음악에서(주로 재즈에서) 배웠다. 그리고 그 리듬에 맞는 멜로디, 요컨대 적확한 어휘의 배열이 뒤 따른다. 그것이 매끄럽고 아름답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리고 하모니, 그 어휘들을 지탱해주는 내적인 마음의 울림. 그 다음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뒤따른다. -- 즉흥연주다.
특별한 채널을 통과한 이야기가 내부에서 자유로이 솟구쳐오른다. 나는 그저 그 흐름을 타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이 온다. 작품을 다 마치고(혹은 연주를 다 마치고) 맛볼 수 있는 '내가 어딘가 새로운, 의미 있는 장소에 이르렀다'는 고양된 기분이다. 그리고 잘만 풀리면, 우리는 독자 = 청중과 그 고조되어가는 기분을 공유할 수 있다. 그것은 다른 데서는 얻을 수 없는 멋진 성취다.
   이처럼 나는 글쓰기를 거의 음악에서 배웠다. 역설적이지만, 만약 그토록 음악에 빠져들지 않았다면 어쩌면 소설가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설가가 된 지 삼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는 여전히 소설 창작의 많은 방법론을 뛰어난 음악에서 배우고 있다. 예를 들어 찰리 파커가 자유자재로 연이어 풀어내는 프레이즈는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유려한 산문 못지않게 나의 문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에 깃든 뛰어난 자기 혁신성은 지금도 내가 문학적 규범의 하나로 우러르는 것이다.
텔로니어스 멍크는 내가 가장 경애하는 재즈 피아니스트인데, "당신의 연주는 어떻게 그렇게 특별하게 울리나요?" 라는 질문에 그는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가리키며 이렇게 대답했다.
 "새로움 음note은 어디에도 없어. 건반을 봐, 모든 음은 이미 그 안에 늘어서 있지. 그렇지만 어떤 음에다 자네가 확실하게 의미를 담으면, 그것이 다르게 울려퍼지지. 자네가 해야 할 일은 진정으로 의미를 담은 음들을 주어담는 거야.(It can't be any new note. When you look at the keyboard, all the notes are there ready. But if you mean a note enough, it will sound different, You got to pick the notes you really mean!)"

소설을 쓰면서 이 말을 자주 떠올린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한다. 그래, 어디에도 새로운 말은 없다. 지극히 예사로운 평범한 말에 새로운 의미나 특별한 울림을 부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놓인다. 우리 앞에는 아직도 드넓은 미지의 지평이 펼쳐져 있다. 그곳에는 비옥한 대지가 개척을 기다리고 있다.

 


ps
좋아하는 말들도 많이 나오지만. 이런 걸 보게 되면 나의 내공은... 쩝..
여태 뭐했나 싶기도 하고. 조금 안다고 까부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사실 내가 글을 쓰는 작가도 아니고, 음악을 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언젠가는 이 말을 내가 단순히 이런 기록이 아닌 온 몸으로 느끼는 시절이 오기를 기대하며,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2012.02.05
By Bi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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