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진/2011

[서울, 2011]창경궁


오늘은 위로가 필요한 날이다.
가끔 위로가 필요한 날이 있다. 
이유없이 위로가 필요한 그런 날이 있다.

최근 기분이 좋다 싶었는데, 반대급부로 찾아온 거 같기도 하고,
어쩌면 어제 저녁 먹고 일찍 잠이 들고, 내내 설잠을 자면서 아침에 밍기적 대다가 늦게 일어난 탓일 수도 있고, 어제 얘기한 것처럼 삶의 불안정요소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뭐 더 근본적인 부분에 있어서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날은 가끔 찾아온다. 혹은 툭툭 찾아온다. 반갑지 않은 그런 날이지만, 처음에는 모른다. 
무언가 꼬여가고 맘대로 안될 때 그런 날인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일까. 
오늘 사진을 찍은 후에 혹은 찍는 과정에서 짜증이 났다. 화가 났다.
도대체가 무엇을 찍은 건지 왜 셔터를 누른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왜 셔터를 누른건지...

지하철을 타고 가는 순간에, 아니 그 이전부터 , 
날씨때문이었을까. 어제 노래의 여운이 남아있어서였을까.
웅산의 Tomorrow 앨범만 계속 돌려 들었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차분한 곡이라 계속 들었다.
결론적으로 실수였다. ESPN 의 축구방송이 끝나고 나오는 음악같은 음악을 들었어야 했다.(찌질한 sbs espn말고...)

정말 아무생각 없이 셔터만을 눌렀다. 모르겠다. 왜 그런식으로 셔터를 눌러댔는지.
생각도 상상도 없었다. 노력도 없었다. 시도도 없었다.(고 하기에는 바닥에서 화면 안보고 찍은 사진이 몇장 있기는 하다.) A의 존재이유를 무시했고, S는 그나마 노출 때문에 좀 변경하였다. 노출은 조금 신경을 썼으나 이건 뭐 액정에 보이는 것 때문에 신경 안쓸수가 없었을 뿐이다. 최소한의 성의도 없었다. 이건 뭐하자는 건지...

이렇게 되면 다음에 한번 더 가야 한다는 맘을 먹는다. 그리고 다음주에 바로 가게 될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렇다고 최소한의 성의있는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결과물이 차이나게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럴만한 능력은 없다. 하지만 최소한의 성의있는 사진을 찍도록 노력은 해야겠다. 그런 사진을 찍을려고 하는건 잘하건 못하건 성의있는 인생을 살자는 노력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하다보면 조금은 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문제는 다음주에 바로 다시 그곳에 가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한번 두번 밀려온 일들이 쌓여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밀려 다음주에 뭔가 할려고 했던 것은 그 다음주로 , 다음으로 그렇게 밀려가서 언젠가 숙제하는 기분으로 그것을 하게 된다. 아직도 삶이 숙제로 가득차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밀린 숙제를 겨우겨우 해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러다 보면 또 위로가 필요한 상황이 찾아온다. 누구도 위로해 줄 수 없는 위로가 필요한 상황이.


그런 한심한 마음을 뒤로한채로 커피한잔 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모처럼의 ...이니 한잔 하고 가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결정에도 몇 번의 망설임은 있었다. 오늘 같은 날은 망설임의 날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해야 할 숙제도 있어다. 돌아가면 안할 거 같아서 커피를 핑계로 밀린 숙제하나를 해야하기도 하였다. 

끈적이는 느낌의 커피가 위로 들어가는 순간 오늘 하루가 위로 받는 느낌이었다. 아주 진한 커피 한잔이 나를 위로해 주는 듯 하였다. 어떻게 내가 좋아하는 느낌으로 커피를 타 주실수가 있는지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 느낌, 이래서 진한 커피를 좋아하는 건 아닐까. 

어느날 혼자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허무해지고 아무말도 할 수없고
가슴이 터질 것만 같고, 눈물도 쏟아지는데,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데 만날 사람이 없다.
혼자 바람맞는 세상, 거리를 걷다가 가슴을 삭히고
마시는 뜨거운 한잔의 커피.

아, 삶이란 때론 이렇게 외롭구나
[어느날의 커피 ] - 이해인

정말 대 공감이다. 이 글의 느낌이랄까. 진한 커피한잔에 이 글이 생각나고, 이 글에 진한 커피한잔이 어울리면서 나를 위로해준다.

또 이 진한 커피 한잔에 어울릴만한 말이라면,
설령 네가 죽을만큼 외롭더라고, 사람을 사랑한다고 착각하지 말자.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감정을 필요로 하는 것일 뿐이다.

숙제를 하면서 마시는 진한 커피에 위로를 받고,

그 다음 한잔도 따뜻하고 맑은 것이 왜 그리 좋은지.
아, 삶이란 때론 이렇게 외롭구나.

가을이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와버리면 가을이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바래본다 가을이 가기전에 위로가 될 수 있는 커피 한잔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사진 > 201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커피  (0) 2011.11.12
[서울, 2011] 창경궁  (0) 2011.10.29
  (0) 2011.10.22
한강, 2011  (0) 2011.10.22
때늦은 장미  (0) 2011.10.22